K(케이)팝 가수가 탄생하기까지는 다양한 단계를 거친다. 특히 아이돌의 경우 다년간의 연습생 시절을 거쳐 데뷔조에 합류한다. 아티스트의 레퍼토리를 만들어가는 A&R팀은 이들의 개성과 이미지를 바탕으로 곡을 수집하고, 프로듀서는 이를 바탕으로 곡을 만들어낸다. 안무팀과 스타일링팀은 만들어진 곡에 걸맞은 안무프로그램과 의상, 화장을 기획한다. 이후 홍보팀과 마케팅팀, 매니지먼트팀이 이들의 데뷔를 알리고 다양한 활동을 진두지휘하며 음원시장에서 성공을 위해 뛴다.
인공지능(AI)라는 녀석(?)이 등장하면서부터 이 공식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메이브(MAVE:)’를 일례로 들어보자. 이 AI걸그룹은 지난 2023년 1월 25일 싱글 '판도라'를 발매하며 데뷔했다. 마티(MARTY:), 티라(TYRA:), 제나(ZENA:), 시우(SIU:)로 구성된 이 4인조 그룹은 게임 회사 넷마블의 자회사인 메타버스 엔터테인먼트 소속이다. MAVE:는 모든 멤버가 AI로 구동되는 완전한 디지털 걸그룹이다. 실제 사람이 아닌 가상의 아이돌이다. 당연히 기존의 아이돌 그룹 제작 공식이 적용되지 않는다. MAVE:와는 조금 결은 다르지만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운 '플레이브(PLAVE)'도 이러한 업계 변화의 좋은 예다. 블래스트(VLAST)사 소속 가상 아이돌 그룹인 'PLAVE'는 은호, 밤비, 예준, 노아, 하민으로 구성된 5인조 보이그룹이다. 이 그룹은 지난 3월 '웨이 포 러브(WAY 4 LUV)'로 MBC ‘쇼! 음악중심’에서 1위를 차지하며 주목을 받았다. PLAVE가 실제 아이돌 그룹과 다른 점은 이들이 캐릭터라는 점이다. 이 캐릭터들 뒤에는 실제 사람들이 있다.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이 '사람'들의 목소리, 움직임, 춤이 각 캐릭터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완전한 AI가상 아이돌은 아니지만 분명히 사람이 전면에 서고, 이들의 가상 캐릭터들이 온라인 상에서 활동한다는 기존 아이돌의 공식과는 정반대다.
한술 더 떠, 이제는 일반인도 온라인 상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가상 캐릭터를 스스로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예컨대 AI 아트 생성기 프로그램 '시아트(SeaArt)'로 원하는 아이돌 멤버들의 이미지를 무작위로 구축할 수 있다. '사운드로우(SOUNDRAW)' 프로그램은 분위기만 정해주면 이에 걸맞은 곡을 순식간에 만들어 낸다. 챗GPT가 이 곡에 가사를 만들어준다. 비록 온라인에서 만이라는 공간적인 제한이 있지만 누구라도, 기초적이지만 AI 기술을 이용해 K팝 아이돌의 이미지를 생성하고, 작곡하며, 스타일링과 안무까지 만들어낼 수 있다.
언제나 그러했듯이 기술의 발전은 제작단가를 낮춰 다양한 플레이어들을 산업에 진입시켜 결국 산업전반의 형태를 바꿔 놓는다. K팝 산업도 예외는 아니다. 아직은 걸음마 단계지만 이 AI라는 ‘괴물’은 거대한 자본 없이는 제작은 물론, 생존 자체가 현실적으로 어려워진 K팝 산업을 본질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나고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K팝 아이돌 홍수 시대를 앞당기고, 초소형 비용으로 매력적인 아이돌 그룹을 만들어 내 결국 시장이 핵폭탄급 지각변동을 초래할 가능성을 높일 것이다.
카카오 엔터테인먼트 음악 콘텐츠 사업부의 전략 지식재산(IP) 팀장이자 MAVE: 전담팀 리더인 올리비아 오씨는 지난해 5월 롤링스톤스 매거진과 인터뷰에서 "가상 아이돌 그룹이 솔로 아티스트보다 우위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며 "AI아이돌 그룹은 더 역동적인 안무와 시선을 사로잡는 퍼포먼스를 선보일 수 있으며, 멤버가 여럿이면 IP 확장성과 팬과의 소통은 물론 그룹의 세계관과 줄거리 선을 만드는 데 더 많은 작업을 할 수 있다. 또한 걸그룹은 의상이나 헤어스타일과 같은 시각적 섬세함을 다양화하고 증폭시킬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같은 현상은 단지 K팝 산업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다양한 분야에도 적용된다. 벌써부터 언론 등에 'AI가 본격화된 시대에 없어질 직업 10'등의 기사를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을 정도니까. 다만 이 시점에서 AI가 K팝 산업에 미래의 '적'으로 만 비춰지는 것은 기우일 수도 있다.
우선 음악의 본질은 사람의 감정이다. 음악을 사전적 의미로 정의하자면, "인간의 음성이나 악기의 소리의 조합, 혹은 그 중 하나에 의한 소리의 아름다움, 즐거움, 흥분, 감성, 행복감, 슬픔 등의 감정을 만들어낸다"라고 규정한다. 즉, 원류는 사람의 감정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AI가 언젠가 사람의 감정마저 학습해 낼 수 있는 시대가 오게 되더라도 이때는 오히려 진짜 사람이 만들어낸 음악이 '독창성(Originality)'를 지닌 진짜 음악 대접을 받게 될 확률이 높다. 기능적인 면에서 아무리 같은 가치를 지난 물건이라도, 우리가 희소성과 창조자의 철학을 품은 '명품'에 열광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나아가 AI기술을 역으로 이용해 아직 발견되지 않은 다양한 재능을 발굴하는데 사용할 수 있다. 곡을 만들 때, 안무를 짤 때 , 연주를 할 때, AI기술을 제대로만 활용한다면 오히려 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다. 그동안 업계와 관계망이 없거나, 혹은 방법을 몰라 작곡이나 안무, 스타일링에 재능이 있어도 이를 발휘할 기회가 없었던 이들에겐 큰 기회다.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AI기능을 활용해 더욱더 많은 이들이 그들의 예술적 재능을 분출할 수 있는 마중물이 되는 셈이다.
기술의 발전은 언제나 우리 사회의 형태를 변화시킨다. 정보 기술(IT)기술의 발달로 우리는 더 이상 값비싼 통신비를 지불하지 않는다. 교통수단의 발전으로 거주공간 제약도 대폭 축소됐다. 물론 이 과정에서 다양한 문제점들이 발생했지만 우리는 이를 지혜롭게 극복하고 그 과실을 향유하고 있다.
AI시대는 피할 수 없는 현실로 이미 다가왔다. 다만 인공지능의 새로운 기술을 활용해 우리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하면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을 때다.
AI가 초래할 수 있는 저작권 침해, 도덕적 타락, 인간성의 파괴 등 현재 AI기술을 앞두고 대두된 다양한 우려에 관해서는 합당한 법제도를 도입하고 대대적인 계몽 캠페인을 펼쳐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동시에 과실은 극대화하도록 해야만 한다. 인류는 기술의 발전에 따라 지속적으로 진보했다. AI가 우리의 적이 될지, 친구가 될지는 오롯이 우리 손에 달렸다.
황준민 교수는 중앙일보 기자 출신으로 전 JYP엔터테인먼트 홍보이사를 역임했으며 2022년부터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에서 글로벌음악산업을 강의하고 있다.